“브레인네트워크를 주요 대도시들에서 함께 열면 미주동창회 싱크탱크 만들 수 있어...”
20-30년 후, 미주동창회가 소멸되지 않으려면 적극적으로 기금 조성해야...
윤상래 미주동창회장의 임기도 절반을 지나 후반부에 진입했다. 차기회장직을 포함한 지난 2년은 평의원회의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중간에 브레인네트워크도 두 번 개최하였다. 이제 큰 이벤트성 행사는 끝나 여유가 있을 것 같아 후반부 임기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을까 알아보기 위해 동창회 사무실에 찾아 갔다. 윤 회장은 아직 브레인네트워크 행사를 하나 더 개최해야 하기 때문에 요즈음도 계획을 마련하고 관련 인사를 접촉하며 조언도 구하고 방향도 정하느라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대담: 정태영 논설위원 (문리 71)
동창회 사무실은 윤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던 트윈시티 애니멀 허스피탈 건물 2층에 있었다. 널찍한 공간에 길다란 탁자가 서너개 이어져 있고 탁자 앞으로 의자가 둘러 싸여 놓여져 있어 20여 명 정도는 항상 각종 회의를 할 수 있게 잘 갖추어져 있었다. 뒤편에는 주방 시설이 되어 있어 커피, 간이 음식 조리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모든 음식 관련 기구가 잘 준비되어 있다. 윤 회장은 각종 회의에 참석하는 동문들에게 다과, 음료, 음식 등을 정성스럽게 풍성하게 차려 제공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덕분에 내조자인 김복섭 여사만 말없이 고생하지만..., 사실 음식을 차리고 먹고간 뒷 자리를 처리하는 것은 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윤 회장은 이곳에서 동물 병원을 거의 40년이나 운영했다. 지난해 은퇴했다. 이번 인터뷰에선 그동안 필자도 잘 알지 못했던 동창회 기금 모금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현황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윤 회장은 기금 모금 문제로 계속 바쁘고 모금액 증대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브레인네트워크의 역사와 향후 방향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 지난 6월 27차 평의원회의를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실질적으로 평의원회의를 두 차례 진행하셨는데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히 챙기시는 것을 옆에서 직접 보며 많은 헌신을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끝나셨는데 소회는 어떠신지요.
“평의원회의는 아무라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잘 하려면 준비를 해야합니다. 회의를 하면서 훈련은 아니고.., 똑같은 것을 하면서 자꾸 그 절차를 습득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회의 때 일사분란하게 쫙 나가지 않아요? 준비가 철저했지만 지난 회의에서는 사람이 부족했어요. 특히 회의장에 함께 진행을 도울 동문들이 부족했습니다. 몇 사람과 일하니까 어려웠어요. 그러나 잘 끝났습니다. 미주 전역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동문들이 오니까 잘 보여야 하는데...좌우간 잘 했어요.”
- 준비하시면서 가장 힘들었거나 애로사항을 느끼신 것은 없었습니까?
“시간이지요. 실무진들이 풀타임 잡을 가지고 하니까 낮엔 시간이 없고 밤에 일해야 하는데 가족들 케어할라, 직장일 할라 등 시간을 쪼개여 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어요. 나도 하루 종일 일했지만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러나 여럿이 힘을 합해서 하니까 큰일을 잘 할 수 있었지요.”
- 내년에는 뉴욕에서 평의원회의를 합니다. 주요 준비는 뉴욕서 하고 여기서는 몇 가지만 하지요?
“회의 진행은 우리가 합니다. 평의원회의 마지막에 동창회기가 차기 회장에 넘어가는데 그전까지 진행을 합니다. 다만 전체 회의장 준비, 만찬 등은 뉴욕에서 하지요.”
- 평의원회의를 하시면서 개선사항 등 느끼신 점은 없나요?
“지난번 평의원회의 평가회의에서 다 말했지요. 다만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사람 부족이었습니다. 이곳 뉴잉글랜드에 동문은 많지만 다들 바쁘니까 어려워요.”
(*참고로 평의원회의 평가회의 내용은 별도 기사로 이번 회보에 게재되어 있다.)
- 평의원회의나 기타 다른 행사를 준비할 때 미주 전체 동문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추진하는 방안은 없나요?
““좋은 이야기에요. 그러나 난점도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많은데 막상 부닥쳐서 그것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나는 바빠서 안돼’ 하는 답변이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장 핵심적인 것만 골라서 하자는 것이 내 개인의견이지요. 지금도 이것 저것 하라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프라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할 만한 사람이 없어요.”
- 지난해에 회장직을 시작하시면서 병원일을 은퇴하시고, 동창회장직을 풀타임 잡으로 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해보시니까 풀타임 잡으로 하실 만큼 일이 많았나요?
“물론 풀타임으로 할 만큼 일이 풀로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한 일도 정리해야하고 다른 것들도 정리해야 하면서 일을 하니까 풀타임 잡이 되요. 저쪽 책꽂이 하나가 그 동안 (동창회 관련) 이메일과 다른 서류들로 꽉 차 있어요. 그게 1년 동안 한것입니다. 이메일이 하루에도 답신해야 할 것만 50여건이 와요. 다른 것까지 합하면 200건이 넘지요. 일주일이면 2000개가 들어옵니다.”
- 임기도 절반이 지나셨고 이제 1년이 남아 있습니다. 이제 큰 행사도 지났으니 이제 홀가분한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놀라는 표정) 왜 홀가분해요?”
-일이 더 많아요?
“걱정이 더 많지요. 기금 마련해서 그걸 키우겠다 했는데 커지는게 그게 안보이니까 걱정이고...”
- 어떤 기금이 있나요?
“센츄리 파운데이션(동창회 기금)을 $300만 모금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작년에 그것을 ‘SNUAA-USA 센츄리 파운데이션’으로 이름을 정식으로 정해 만들었어요. 파운데이션을 설립한거지요. 한국어로 말하면 ‘서울대 미주동창회 재단’이 되는 거지요. 올해 평의원회의에서 관악후원회 회칙에 통과시켜 법적 근거도 마련했습니다. 이 기금은 원금을 건드리지 않아요. 후원 이사회비로 조성되는데..., 종신이사가 $3000을 내지요. 현재 종신이사가 69분이 계시는데..., 그래서 현재 기금이 약 거의 $23만 정도 되는데..., 하나도 안썼어요. 원금을 건드리지 않고 이자/이윤 만 회장의 재량에 따라 동창회 운영에 사용합니다. 앞으로 $300만이 모금되면..., 거기에서 발생하는 수익, 즉 이자, 펀드 투자 등으로 대략 1년에 $10만은 들어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러면 운영비의 절반은 커버할 수 있지요. 이걸로 장차 회보도 만들고 동창회 운영에도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기금을 조성하는 동기는 뭔가요?
“앞으로 무슨일이 벌어지냐 하면 말이죠..., 지금 회비를 보내주시는 분의 다수가 50-60학번대 분들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후속 회원들이 지속적으로 충당되지 않으면 회비수입이 고갈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후배 학번들도 나이가 들면 동창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어렵습니다. 50년대 - 60년대 학번 분들은 학창 시절에 어렵게 다니셨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애착이 크십니다. 그래서 그 부분이 감소되면 동창회는 흐지부지 될 공산도 있지요. 운영을 못하니까 말이죠. 그런데 아직껏 $30만도 못 모았는데, 언제 모읍니까? 좌우간 그게(기금 모금) 꿈입니다.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어요. 우리가 꿈이 있으면 의지가 있고 이룰 수 있는 꿈입니다. 여기에 우리 동창회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그게 없어지면 우리 동창회도 없어집니다. 그게 없으면 20년, 30년 후에 우리 동창회가 없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윤 회장의 기금 마련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의 의지와 열망이 진지했다.)
- 그러면 기금 마련 촉진을 위해 무슨 구상을 하시나요?
“그래서 일반 종신이사 회비 $3000 가지고는 부족하기 때문에 종신이사를 일반,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이렇게 구분을 했습니다.
일반은 $3,000 내신분, 골드는 $10,000까지 내신 분, 플래티넘은 $50,000까지 내신 분, 다이아몬드는 $100,000까지 내시는 분으로 했습니다. 앞으로 내실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코네티컷에 계신 오인석(법대 58) 전 미주동창회 회장님이 거의 $1만 이상을 내셨어요.”
- 다른 기금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모교 발전기금이 있는데, 그전에 오인석 전 회장님께서 앞장 서셔서 $100만 모으기 운동을 했어요. 목적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여름방학 때 여기 미국에 초청하는 등 모교 발전을 위해서 미주동창회에서 돈을 모아 쓰자는 취지였지요. 현재 잔고가 약 $13만쯤 됩니다. 서울대학교 본교에서 직접 모금하는 미주발전기금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미주동창회에서 자체적으로 직접 모금하는 거지요”
- 장학 기금은요?
“장학 기금은 없어요. 그냥 장학기금을 기부 받아서 주는 것입니다. 올해에 처음했어요. 장학생 11명을 선발한후, 사정을 고려해서 한명을 더 추가해서 총 12명에게 장학금을 선발해 수여했지요. 후배들이 너무나 우수해서 더 줄 돈이 없는것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 앞으로의 동창회 운영계획이랄지 다른 계획은 없으십니까?
“앞으로 중요한 것은 브레인네트워크이지요. 이게 아주 굉장히 중요한 건데...좀 어려운 것이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브레인네트워크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느냐 하면..., 1999년이에요. 그때 오인석(법대 58) 회장님을 비롯해서 20여명의 서울 총동창회와 미주동창회 손님들이 모이셨는데 당시 총동창회 회장님이셨던 전 국회의장 김재순(별세) 회장님께서 ‘아 뉴잉글랜드 동창회가 잘된다는데 한번 가보자’ 고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당시 박경민(의대 53, 별세) 뉴잉글랜드 동창회장하고 보스턴에 돌아와서 준비를 해서 세미나도 하고 했지요. 이러한 것을 보시고는 김 회장님이 나중에 하시는 말씀이 ‘여기 와서 보니까 뉴잉글랜드에 훌륭한 동문이 많은데 여기 싱크탱크를 왜 안 만드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얼떨결에 ‘아 만들어야지요’ 하고 대답을 했어요. 그런데 싱크탱크 만드는 것이 쉽나요. 워싱턴에 싱크탱크가 많은데 건물도 어마어마하고..., 그런데 우리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걸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가 2007년 뉴욕에서 평의원회의를 했는데 우리 몇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지요. 그때 총동창회의 임광순 회장도 오시고..., 그 분이 ‘뭐 그거 하나 못 만들어?’ 하시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떨떨 하시는데 돌아가신 송순영(문리 52, 10대 미주동창회장, 시카고) 회장께서 이해하신 것 같았어요. 그분이 ‘브레인네트워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 분이 처음으로 2010년에 LA에서 브레인네트워크를 시작하셨어요. 주제는 한반도 문제이었어요. 그게 쉬우니까요. 그리고 2년 후에 2011년 다시 LA에로 회장단이 넘어갔을 때 그곳에서 김은종(상대 59) 회장이 했어요. 그리고 다음에 오인환 (문리 63, 워싱턴 D.C.) 전 회장 때 처음으로 평의원회의와 동시에 브레인네트워크를 했어요. 그 다음에 손재옥(가정 77) 전 회장이 역시 평의원회의와 동시에 브레인네트워크를 했어요. 그렇게 해서 이어져 왔지요.
저는 평의원회의와 별도로 했어요. 지난해 10월과 올해 3월에 두번 했지요.”
- 브레인네트워크를 어떻게 발전시킬 구상이라도 있으시나요?
“앞으로는 우리가 더 브레인네트워크를 발전시켜 싱크탱크로 하고 싶어요. 특히 여기는 뉴잉글랜드인데 훌륭한 두뇌가 많기 때문에 테크놀로지 쪽으로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해요. 여기는 과학자들이 많아 모두들 연구를 하고 있으니 싱크탱크를 하더라도 비지니스 즉 벤쳐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와야 합니다. 이걸 활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투자할 사람을 구하고 거기서 자금을 받아서 계속 우리가 활동할 방안을 구축해야 된다 이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게 자동적으로 싱크탱크가 되는 거지요.”
- 아, 기업과도 협력체제를 구축한다는 이야기 군요.
“그것이 앞으로 과제입니다. 관심있는 사람을 찾고... 그래서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삼성, LG 등 기업을 참여시켜서 해야 하지요. 그들이 미주 동문들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게 말입니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겁니다. 그러면 재정적으로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되지요. 그러면 영구적으로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임기 끝나기 전에 그것을 해 놓으면 그것이 브레인네트워크가 되고 싱크탱크가 되는 거지요.”
- 싱크탱크라고 말씀하셨는데...
“네, 정치적인 것은 워싱턴 D.C에서 브레인네트워크를 하고, 경제적인 것은 뉴욕에서 하고 하는 식으로 그러한 것이 합쳐지면 자동적으로 미주동문 싱크탱크가 되는 거지요. 그것이 앞으로 할 사업입니다. 여기 뉴잉글랜드에선 MIT에 있는 과학자 등 다른 많은 분들을 접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것입니다. 내년의 브레인네트워크는 나노(nano)를 주제로 할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 어느 선배님이 “윤 회장이 평소 동창회 일에 너무 열심히 하여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고 말하신 것을 들었습니다. 동창회일에 특별히 열심히 하시는 동기랄까 사연이 있습니까?
“제가 병원을 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급여가 (일반 병원에 비해) 많지 않아서 인지... 미국 사람 평균이 스마트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미국 사람들만 보다가 서울대 동문들을 보면 스마트한 분들이 너무 많아요.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스마트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분들 만나는 것에 빠진 것 같습니다. 동문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말도 통하고 그래서 열정과 애정을 갖게 됩니다.”
- 지난 1년 하시는 것을 보니까 사모님이 너무 헌신적이십니다.
“이 사람이 도와주지만... 자기가 안 도와주면 망신당할까봐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고맙지요. 동창회 운영 뒷살림을 이 사람이 맡아 주니까 고마워요.”
윤상래 회장은 부인 김복섭 여사와 2남 1녀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 녹십자에 미생물부 책임자로 근무하다가 1972년 도미했다. 캔사스에서 회사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1977년 보스턴으로 이주해 동물병원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윤회장이 직접 디자인하고 건축한 동물병원은 6000 sf.의 크기에 배후에 23에이커의 숲도 있다.